더아트로 미술계 인사를 아우르면 그들의 활동과 시각을 알아보는 릴레이 인터뷰를 마련했다. 정용국→이대범→현시원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역할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뒤바뀐다. 다음 인터뷰의 상황까지 고려해가며 인터뷰 대상을 선정해야 하는 이 코너는 미술계 인사들의 인맥과 관심사에 따라 다음 주인공이 누가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간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자.
현시원(이하 현): 지금까지 많은 전시를 기획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큐레이터로서 인터뷰 한다는 것이 솔직히 민망하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에게 독립큐레이터 활동에 대한 '대안' 혹은 '미래'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웠다.
현: 공감한다. 대안을 표방하는 '새로운' 공간이 등장한다고 무엇이 달라질 지 의문스럽다.
현: 2006년 봄 시작한 [워킹 매거진] 의 경우 학부 시절 만난 친구 둘과 모여 만들기 시작하면서 책임감 이라는 측면이 덜했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입장이 조금씩 달랐다. 거창하게 시작했던 건 아니지만 당시 나는 [워킹 매거진] 이 하나의 전시 기획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 둘은 [워킹 매거진] 을 직업과 다른 취미 정도로 언급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서로 대화를 참 많이 나눴다. 나의 경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게재하는 지면이었기 때문에 결코 취미는 아니었다. [워킹 매거진] 이 기존의 구조에서 벗어나 전시를 해보는 '백지'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내게 큰 자유와 자극을 주었다. [워킹 매거진] 멤버 3명이 서로의 원고를 교정해 주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면서 서로가 자극과 기준이 되었다.
현: [워킹 매거진] 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업이 난 너무 좋았다. 그들은 [워킹 매거진] 의 페이지를 위해 짧은 시간에 새로운 작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이 과정이 나에게는 소중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잡지를 만들던 한 친구가 같은 학교 사람들과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언급을 했다. 이 문제가 2008년의 전시를 통해 표면화 되었다. 또 다른 문제로는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판을 짜야 했는데, 잡지에 실렸던 작업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 전시가 갖는 재미가 반감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책을 만들 때의 흥겨움을 워킹 매거진 전시 《walking magazine walks》 에서는 크게 찾지 못했다.
현: 지금은 일단 '친구'라는 단어가 정확한 거 같지는 않다. 같이 가는 사람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그들에게서 내가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작업의 과정과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어쩌면, 가까운 사람들이자 무서운 사람들이다. 더 신랄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노트에 적었던 것이 아는 친구들과 하는 친목이나 파티 같은 전시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전시를 하는 것에 대해서 단점 뿐만 아니라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 어떻게 보면 친구가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격상 한 명을 집중해서 만나는 편이다. 내게 원동력이 있다면 궁금한 것에 달려가는 것 같다. 주재환 선생님의 경우는 사람에 대한 매력도 있지만,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전시가 '웃음' 관련 전시였고 이때 마음에 품었던 작가가 주재환 작가이다. 그렇다고 내가 질문을 하고 호기심을 갖는다고 모두가 교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에 평행선을 그어 나가는 작가도 있기 마련이니까. 주재환 선생님의 경우 지속적으로 자극을 준다. 지금도 궁금한 채로 내게 남겨진 작가가 너무 많다.
현: 2010년 초겨울 새벽에 수영과 요가를 다녔다. 『디자인 극과극』의 글들은 당시 아침마다 걸어가면서 본 것들이다. 신신애의 노래 '세상의 요지경' 같은 세상이었다. 세상을 거리를 두고 보니깐 부감으로 보였다. 걸으면서 보는 것들이 너무나 새롭게 보였다. 그러나 또 내게 놀라운 것은 2012년의 나는 그때 봤던 작은 것들이 관심이 있으면서도 관심이 없는 지점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변심이 빠른 것 같다. 당시 비상구 간판이랑 청소 노동자들의 형광색 옷, 빨간 우체동 등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꺼번에 다가왔다. 그래서 당시에는 지금 이것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현: 맞다. 여전히 '디자인'에 대해서는 내가 공부를 해야 한다. 사실 당시 나의 관심은 '극과극'이었다. 지금도 'vs'에 대해서는 꾸준한 관심을 가진다. 대칭 구조, 즉 자기가 아닌데, 자기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되는 그 순환에 흥미를 느낀다. 위치 바꾸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고전적인 주제이지만 이중적인 세계, 대립되는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들에서 파생하는 것들에 관심이 간다.
현: 당시에는 아트선재 맞은편의 천수마트 2층 에서 내가 만났던 조성린이라는 노화가를 세상에 알리고, 공유하고 싶었다. 또한 나에게는 그것을 무대에서 전개 했을 때, 어떨지에 대한 생각들이 마구 질문처럼 피어났고 박길종, 황호경 전시해설사의 협업으로 화학반응을 야기해 즐거웠다. 2011년, 2012년 전시를 두 번 하면서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서 방황했던 것 같다. 황호경 선생님은 도슨트에서 공연을 위한 배우로, 나는 기획자이면서 또 한편 기획자가 아닌 상태에 이르게 되었던 것 같다. 박길종 작가도 2011년 오로지 조성린 화백의 그림만을 위한 장치들에서 2012년 추가된 장치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고 본다. 지금은 천수마트 2층에 관한 작은 책을 준비 중인데 사실 과감하게 시작을 못 하고 있다. 강력한 이미지인 조성린 화백의 '그림'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현: 다른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글쓰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단계가 있는데,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순간이 있다. 작가의 작업에 대해서 글을 쓸 때, 어떤 관점에서 써야 할까를 고민한다. 제 기준을 갖고 글을 멋지게 쓰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큐레이터로서 작가들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고 글을 쓰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큐레이터로서 쓰는 글의 장점이 있다면 글에 들어갈 내용들을 재밌게 이리저리 '배치'해보는 일인 것 같다.
현: 글쓰기 차원에서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촘촘하게 글을 쓰고 싶다. 작가를 만나고 글을 쓰면서 품었던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전시를 기획하거나 글을 쓰고 이 질문을 단발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여름에 함께 기획했거나 글을 썼던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서도 내가 계속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 하고 싶은 다양한 주제를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주제를 정하고 그것들을 몇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서 풀어야 하는 필연적 이유를 당장 찾지 못 하고 있다. 작품 선택과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없다면 주제를 흥미롭게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작품, 시각이미지 등을 모아 놓으면 좋을 듯 하다. 그러나 몇몇 작가들로부터 어떤 주제와 부합하는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것은 작가들에게도 그리 흥미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현: 호기심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다. 지금 여기서 보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이대범은 1974년 서울 출생으로 현재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미술평론가와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은 소설 프로젝트로 『본문 없는 주석』(2010)과 『30분』(2012)을 출간 했으며, 전시 프로젝트로 《강동주: 정전》(2012, 서울시 종로구 누하동 256)을 진행했다. 지금은 배우 안성기가 출연한 영화를 보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모색 중이다. 공저로는 『정치적인 것을 넘어서:현실과발언 30년』(현실문화연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