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미술전문가

패트릭 리: 초일류 마켓, 서울과 ‘짜릿한’ 만남

posted 2022.10.05


제1회 프리즈 서울을 이끄는 주역은 디렉터 패트릭 리.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지난 15년간 원앤제이갤러리 파트너 및 디렉터, 갤러리현대 이사를 지내는 등 한국 미술계에서 경력을 탄탄히 쌓아왔다. 전 세계가 한국 아트씬을 주목하는 지금, 프리즈 서울의 성공 전략은 무엇일까?


패트릭 리, 제1회 프리즈 서울 디렉터.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패트릭 리, 제1회 프리즈 서울 디렉터.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Art 당신은 2021년 10월 프리즈 서울 디렉터로 임명되어 12월부터 행사를 총괄하고 있다. 프리즈와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었나?


Patrick 나는 수년 전부터 프리즈의 많은 사람을 알고 지냈다.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일할 때 프리즈의 포커스, 프레임 섹션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프리즈에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 갤러리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기억한다. 또 갤러리현대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동안 프리즈에 계속 참가했고, 가장 최근에는 프리즈 서울 위원회에 들어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관해 프리즈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2013년 프리즈 뉴욕 조각공원 전경. 폴 맥카시의 초대형 조각 〈Balloon Dog〉(2013)가 설치되어 있다. 그 뒤로 보이는 텐트에서 아트페어가 진행된다. 프리즈는 아트바젤, 피악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다. 1991년 창간한 현대미술 잡지 『프리즈』가 2003년 런던에서 처음 개최했다. 매년 2월 LA, 5월 뉴욕, 10월 런던에서 아트페어가 열린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2013년 프리즈 뉴욕 조각공원 전경. 폴 맥카시의 초대형 조각 〈Balloon Dog〉(2013)가 설치되어 있다. 그 뒤로 보이는 텐트에서 아트페어가 진행된다. 프리즈는 아트바젤, 피악과 함께 ‘세계 3대 아트페어’다. 1991년 창간한 현대미술 잡지 『프리즈』가 2003년 런던에서 처음 개최했다. 매년 2월 LA, 5월 뉴욕, 10월 런던에서 아트페어가 열린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좌) 안젤라 블로흐 〈Night Sky: Cepheus&Cygnus Square〉 LED 설치, 펠트, 알루미늄, 케이블 266.4x266.4x5cm. 2022 에스더쉬퍼 출품작_안젤라 블로흐는 영국 yBa의 주요 멤버다. LED로 표현한 밤하늘은 우주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우) 로이 리히텐슈타인 〈Woman with Mirror〉 녹슨 청동, 거울 99x28x71cm. 1996 카스텔리 출품작_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 뉴욕 갤러리 카스텔리는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 리히텐슈타인의 1980~90년대 작품을 선보인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좌) 안젤라 블로흐 〈Night Sky: Cepheus&Cygnus Square〉 LED 설치, 펠트, 알루미늄, 케이블 266.4x266.4x5cm. 2022 에스더쉬퍼 출품작_안젤라 블로흐는 영국 yBa의 주요 멤버다. LED로 표현한 밤하늘은 우주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우) 로이 리히텐슈타인 〈Woman with Mirror〉 녹슨 청동, 거울 99x28x71cm. 1996 카스텔리 출품작_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 뉴욕 갤러리 카스텔리는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 리히텐슈타인의 1980~90년대 작품을 선보인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새로운 도시, 새로운 커뮤니티


Art 지난 10개월간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Patrick 런던 프리즈 팀은 지난 20년간 4개 도시에서 페어를 운영한 만큼 경험이 풍부하다. 비록 우리 한국 팀의 규모는 작아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거대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는 것이 강점이다. 시차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유능한 서울 팀원들은 이 일에 큰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 프리즈 서울은 지난해 12월부터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갤러리들과 논의하고 신청서를 검토하는 일이 주요 업무지만,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페어를 만들고 프리즈 위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든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함께 오기 마련이지만… 우리 팀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첫 개최인 만큼 유의미한 결실을 맺길 바란다.


Art 이번 행사는 프리즈의 아시아 최초 진출이다. 전 세계 아트피플이 주목하는 만큼, 디렉터로서 부담도 크겠다. 솔직한 심정을 들려달라.


Patrick 프리즈는 수년간 좋은 평판을 얻었다. 새로운 페어가 열리는 일도 드물지만, 프리즈의 명성과 서울이라는 도시의 조합에 많은 기대가 몰리고 있다고 본다. 서울은 예술적 잠재력과 풍부한 문화를 지녀 ‘아시아의 허브’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장기적인 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Art 프리즈 서울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대상은 아트바젤 홍콩이다. 또한 아시아의 여러 아트페어와 비교했을 때 프리즈 서울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인가?


Patrick 세계에는 수천여 개의 아트페어가 운영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행사는 특정 관객을 타깃으로 삼은 아트페어다. 아트바젤과 프리즈가 최고의 페어로 평가받는 이유다. 프리즈는 예술출판물 시장을 선도하는 잡지 『프리즈』에서 출발했다. 이 매거진은 그들의 아트페어가 어떻게 발전했고 개최 도시와 유기적인 관계로 성장했는지 비평적 담론에 초점을 맞춰왔다. 여기에 전 세계 아티스트, 갤러리스트, 큐레이터가 호응한 것이다. 프리즈의 강점은 수년간 쌓아온 네트워크다. 참여 갤러리와 관객은 아트페어에서 그들이 만나게 될 작품은 물론, 새로운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구축할 가능성에 더 많은 기대를 품는다.
또한 프리즈는 페어를 개최하는 도시와 협력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지역 기관을 행사에 참여시키고 홍보,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프리즈의 역사를 자원 삼아 많은 사람이 서울에 온다는 건 매우 짜릿한 일이다. 프리즈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서울이 아시아 미술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다면 좋겠다. 최고의 페어는 여러 집단의 대화를 촉진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한다. 프리즈 서울이 모범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Art 프리즈 서울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반된다. 먼저, 낙관론은 서울이 아시아 마켓의 중심으로 부상할 거란 기대감이다. 반면, 비관론은 컬렉터가 해외 갤러리에 몰려 한국의 갤러리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계심이다. 두 입장에 각각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가?


Patrick 한국에는 훌륭한 아트씬이 구축되어 있다. 유능한 예술가, 예술에 열광하는 대중, 매력적인 컬렉터와 큐레이터, 훌륭한 미술기관, 유서 깊은 비엔날레 등 강력한 예술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더불어 아트컬렉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작가는 미술기관의 지원을 받아 명성을 쌓고, 한국 미술계를 지켜보는 해외 큐레이터가 비평적 담론을 지속하는 데 도움을 주며, 컬렉터는 꾸준히 성장해 일종의 자급자족하는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문화는 한국을 아시아의 대표 시장으로 성장시키는 탄탄한 기반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갤러리에서 일했던 내 경험상, 컬렉터들은 결코 해외 갤러리에만 열광하지 않는다. 한국의 예술수준을 감안했을 때, 갤러리는 그들이 대표하는 작가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등의 해외 기관에서 개최될 한국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의 전시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기회는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한국 갤러리가 보유한 컬렉터의 풀이 어느 정도 좁아질 거란 걱정도 이해하지만, 그만큼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한국 작가를 지켜보는 기회도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 컬렉팅뿐 아니라 큐레이팅과 비평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Art 세계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이 이어진다. 한국 미술시장도 불황 이야기가 웃돌고 있다. 행사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Patrick 작품 판매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아트페어의 성공을 이곳에서 연결된 네트워크로 판단한다. 아트페어의 평가는 관객의 수준과 페어의 성장 가능성에 달려있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미술인들은 프리즈를 참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곳에서 훌륭한 작품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과 상호 작용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갤러리의 주된 목표는 새로운 고객 확보와 상업적인 성공이지만, 이들은 또한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관계 구축에도 필요성을 느낀다. 프리즈 서울이 순환 경제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한다.


(좌) 아만다 볼드윈 〈Flooded Neptune〉 캔버스에 유채, 160x127cm. 2022 제이슨함 출품작_아만다 볼드윈은 주변 정물과 자연을 기하학적 도형으로 환원한다. 친숙한 일상 풍경은 작가의 손을 거쳐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변신한다. (우) 티투스 카파 〈Analogous Colors〉 알루미늄 패널에 아카이벌 잉크젯, 56x56cm. 2021 투팜스 출품작_티투스 카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캔버스에 소환한다. 도상을 자르고, 지우고, 편집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좌) 아만다 볼드윈 〈Flooded Neptune〉 캔버스에 유채, 160x127cm. 2022 제이슨함 출품작_아만다 볼드윈은 주변 정물과 자연을 기하학적 도형으로 환원한다. 친숙한 일상 풍경은 작가의 손을 거쳐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변신한다. (우) 티투스 카파 〈Analogous Colors〉 알루미늄 패널에 아카이벌 잉크젯, 56x56cm. 2021 투팜스 출품작_티투스 카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를 캔버스에 소환한다. 도상을 자르고, 지우고, 편집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아트씬의 ‘순환 경제’를 꿈꾸는


Art 키아프와 공동 개최도 관건이다. 협력하는 관계지만, 제일의 비교 대상이자 경쟁 상대라는 점도 피할 수 없다.


Patrick 키아프와 함께 페어를 개최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키아프는 프리즈와는 또 다른 역사와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두 페어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되어 관객은 더 많은 갤러리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이번 공동 개최 방식이 두 페어 모두를 방문하는 관객에게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더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키아프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적극적으로 대화하면서 프로그램이나 모범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나는 키아프가 가진 자원과 노하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프리즈는 지역과의 공생이 중요하기에, 키아프와 협력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Art 프리즈 서울에는 메인 전시, 마스터즈, 포커스 아시아, 프리즈 위크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전시마다 어떤 키워드에 주목하면 좋을지 관람 팁을 알려달라. 특히 놓치지 말고 봐야 할 이벤트를 추천한다면?


Patrick 포커스 아시아는 해당 지역의 갤러리를 보여주는 섹션이다. 이 섹션은 두 명의 큐레이터, 크리스 루(Chris Lew)와 장혜정이 함께 기획했다. 이들은 아시아에 뿌리내린 갤러리가 가진 자원을 조사했고, 이를 페어에서 보여줄 것이다. 프리즈 마스터즈는 프리즈 런던과 동시에 열린다. 네이선 클레멘츠-길레스피(Nathan Clements-Gillespie)가 이끌고 있으며, 페어 참여 갤러리들이 가진 하이라이트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 섹션은 고대부터 현대 거장까지의 작품을 다채롭게 볼 수 있는 자리다. 마지막으로 메인 섹션에 참여하는 갤러리들은 각 화랑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일관성과 현대미술 담론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기준으로 선택했다. 부디 시간 내어 모든 부스를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각 섹션에서 다양한 영감을 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Art 한국 미술시장은 2016~17년 페로탕, 페이스갤러리, 리만머핀이 서울 지점을 오픈하면서 조금씩 확장해 갔다. 글로벌 갤러리들이 한국에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Patrick 한국의 아트씬은 강력한 예술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구의 대형 갤러리들은 오랜 시간 그들의 네트워크를 발전시킨 덕분에 현재의 명성을 얻었다. 그들이 서울을 택한 데는 여러 복잡한 요인이 있다. 한국은 길고 풍부한 컬렉팅 역사를 지녔지만, 핵심 컬렉터층은 지난 10년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 확장, 다양화하였다. 한국인은 문화예술을 감상하는 안목이 세련되며, 부단히 배우고 연구해 의견과 경험을 공유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러한 관객층에게 노출되는 기회는 아주 중요하며, 이 컬렉터 풀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또한 여기에 젊은층도 가세하고 있다. 컬렉터 부모를 둔 2~3세 컬렉터이거나 완전히 새롭게 유입된 이들도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문화예술 인식은 널리 퍼져있는 편이다.
세금을 둘러싼 많은 말이 오가는 걸 안다. 물론 경제 구조가 중요하단 말에도 동의하지만, 법은 항상 개정될 수 있다. 다른 인기 있는 아트마켓의 사정을 들어보면, 언젠가 세금에 관한 법률이 시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긴 시간이 걸리는 문제고, 지금 당장 시급하지도 않다. 즉 글로벌 갤러리와 아트페어가 서울에 모이는 이유가 미술품 수입 관세의 부재와 세금 구조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서울은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이 쉽고 물류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다. 서울에서는 도쿄 타이베이 상하이 베이징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인근 도시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한국의 인프라는 매우 훌륭해서 서울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효율적이다. 또 분단 상황에서도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다. 이러한 전반적인 이유로 해외 메이저 갤러리가 서울에 주목하고 있다고 본다.


Art 동시대 아트마켓의 트렌드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특정한 작가, 장르, 매체를 언급해 줘도 좋다.


Patrick 지금은 현대미술의 움직임이 아주 흥미로운 시기다. 나는 신생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등장을 지켜보고 여러 지역 전문가와 교류하면서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모색하는 일을 즐긴다. 현대미술가와 시너지를 내려고 노력하는 전통 예술기관을 발견하는 것도 좋다. 현대미술이 이러한 곳에서 새로운 관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 미술인을 조명한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쿠멘타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루앙루파, 그리고 현대미술에서 BIPOC(백인이 아닌 인종을 가리키는 말) 담론이 부상하는 상황을 보면, 이러한 동향이 문화예술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다고 생각한다.


Art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원앤제이갤러리 디렉터 및 파트너, 갤러리현대 이사로 활동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각 갤러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 미술을 시작한 계기는?


Patrick 원앤제이갤러리는 규모가 큰 갤러리가 아니어서 A부터 Z까지 맡아야 할 일이 많았다. 작가를 지원하고, 전시를 열고, 큐레이터와 컬렉터에게 알리고, 새로운 작가를 찾고, 아트페어에 가고… 이러한 모든 일을 전 세계에 홍보했다. 매우 집중도 높은 업무였고 값진 경험이었다. 원앤제이갤러리에 몸담는 동안 오늘날 미술계에서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을 만났다. 한편, 갤러리현대에서는 내부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춰 컬렉션의 위치를 좀 더 높은 수준으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적인 업무를 맡았다. 이곳에서 일할 때는 꽤 유명한 작가들과 직접 만날 수 있어 즐거웠고, 해외 주요 기관에 이들의 작품을 노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보람찼다.
갤러리스트는 대학 시절부터 내 꿈의 직업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 특히 아버지 덕분에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했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오페라, 클래식, 건축, 디자인 등 예술을 애호하셨기에 나도 슬하에서 영향을 받았다. 나는 일찍이 법률과 금융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항상 아트카탈로그를 읽으면서 연구하고 전시를 관람했다. 그러다 마침 갤러리와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를 놓치면 내가 후회하리란 걸 잘 알고 있는 아내가 도와준 덕분에 2년간 첫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 부부에게는 두 살배기 아이도 있던 터라, 나를 믿어준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다.


(좌) 스티브 로크, 〈Crusiers #6〉, 클레이보드에 에그 템페라, 오일 에멀션, 27.94x35.56cm. 2021 알렉산더그레이어소시에이츠 출품작_스티브 로크는 퀴어의 욕망과 섹슈얼리티를 탐구한다. (우) 헨니 알프탄 〈Needle〉 캔버스에 유채, 50x61cm. 2022 카르마 출품작_헨니 알프탄은 누군가 몰래 ‘훔쳐보는 시선’으로 일상을 포착한다. 그 장면은 흡사 영화 스틸이나 연극 같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좌) 스티브 로크, 〈Crusiers #6〉, 클레이보드에 에그 템페라, 오일 에멀션, 27.94x35.56cm. 2021 알렉산더그레이어소시에이츠 출품작_스티브 로크는 퀴어의 욕망과 섹슈얼리티를 탐구한다. (우) 헨니 알프탄 〈Needle〉 캔버스에 유채, 50x61cm. 2022 카르마 출품작_헨니 알프탄은 누군가 몰래 ‘훔쳐보는 시선’으로 일상을 포착한다. 그 장면은 흡사 영화 스틸이나 연극 같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한국의 힘, 문화예술 인프라


Art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지난 15년간 한국 미술현장을 직접 경험했다. 동시대 한국 아트씬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Patrick 지난 15년간 미술계의 많은 것이 변했다. 한국 현대미술이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한국이 글로벌 아트씬에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성공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어서 축복이다. 1990년대에 활약한 작가부터 젊은 미술가에게까지 엄청난 물결이 일어났다. 이들은 해외 유수 기관, 큐레이터, 컬렉터, 갤러리스트, 아티스트 등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과 교류한다. 그들 중에는 김수자, 서도호, 최정화, 강익중, 니키 리, 문경원&전준호, 양혜규, 아니카 이, 임민욱이 있었고, 지금은 강서경, 이강승, 크리스틴 선 킴, 갈라 포라스 킴, 이미래 등이 있다. 곽인식, 이승택, 이승조, 박현기 등 전후 세대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세계를 펼친 이들도 빠트릴 수 없다. 또 한국 현대미술을 지원한 국내외 큐레이터도 많다. 이들은 시야를 확장해 한국 작가와 한국계 및 디아스포라 작가의 활동을 발견하고 작품 세계를 논의하는 소통 창구를 열었다. 이들 중에는 김선정, 클라라 킴, 이숙경, 크리스틴 킴, 정도련, 주은지, 김현진, 엘레노어 현, 안경 등이 있다.
한국에는 여러 대단한 미술관이 있다. 그중 일부는 비평적 담론을 생성하며 새로운 기준을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아트선재센터에서 훌륭한 전시가 많이 열리고, 이 외에도 제 역할을 묵묵히 맡고 있는 공공 및 사립 미술기관이 많다. 흥미로운 비영리 기관, 대안공간,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도 곳곳에 설립되어 우리는 최고의 문화예술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 대안공간루프, 대안공간풀, 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 인사아트스페이스, 시청각, 합정지구, 쌈지스페이스 등과 같이 문을 닫았음에도 현재까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관들도 있다. 또한 광주, 부산, 서울에서 열리는 3대 비엔날레도 한국을 향한 관심을 계속해서 제고한다. 마지막으로 갤러리와 컬렉터는 작가와의 관계, 아카이브 및 저술, 예술제도에 새로운 기준을 고민하고 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에서 톡톡히 역할을 해내는 갤러리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활동하는 티나킴갤러리, 커먼웰스앤카운슬, VSF 등이다.


Art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당신이 이끄는 프리즈 서울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Patrick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해 이곳의 아트씬에 감동받았을 때가 기억난다. 오늘의 역사는 백남준과 같은 선구적인 예술가, 작가를 지원한 갤러리, 전시 장소를 마련하고 비평적 담론을 만든 큐레이터와 기관, 그리고 컬렉터가 이끌어온 수십 년 노력의 결과다. 이 모든 것은 동시다발로 진척되었고, 그만큼 기반이 아주 튼튼하다. 내가 앞서 언급한 인물과 기관들은 단지 부가 설명을 위한 리스트가 아니다. 투자 목적의 컬렉팅이 시장의 과열화를 일으켰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예술기관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후원을 위한 기회와 잠재력을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프리즈 서울이 이러한 지평에서 대중에 미술을 노출하고 대화를 늘려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좌) 윌렘 데 쿠닝 〈무제 XXIX〉 캔버스에 유채, 195.6x223.5cm. 1986 스카스테트 출품작_스카스테트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윌렘 데 쿠닝의 작품을 내놓는다. (우) 테츠야 이시다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24.8x22.3cm, 2000 가고시안 출품작_테츠야 이시다는 1990년대 일본 젊은 세대의 우울감을 기이한 인간상으로 표출했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좌) 윌렘 데 쿠닝 〈무제 XXIX〉 캔버스에 유채, 195.6x223.5cm. 1986 스카스테트 출품작_스카스테트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윌렘 데 쿠닝의 작품을 내놓는다. (우) 테츠야 이시다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24.8x22.3cm, 2000 가고시안 출품작_테츠야 이시다는 1990년대 일본 젊은 세대의 우울감을 기이한 인간상으로 표출했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미래 세대를 위한 예술


Art 아트페어를 이끌어가는 디렉터의 중요한 자질과 능력은 무엇일까?


Patrick 아트페어 디렉터의 목표는 페어가 공개되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여기엔 갤러리는 물론 컬렉터, 미술기관, 큐레이터, 작가, 예술가, 일반 대중, 언론이 포함된다. 최고의 아트페어 디렉터는 현장에 참여하고, 탐구하고, 항상 배우고, 겸손해야 한다. 내 목표는 아트페어에 참가하고자 시간과 자원을 쏟은 사람들이 최대한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것이다.


Art 마지막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당신의 최종 목표는?


Patrick 인간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 예술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가? 내겐 중요하다. 표현하고 창조하고 숙고하려는 태도는 인간 고유의 특징이다. 예술계 일원으로서 나는 현대미술의 담론을 발전시키고 유망한 예술가를 지원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 내 목표는 미래 세대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낫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Art 동감한다. 프리즈가 서울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트리길!


※ 이 원고는 아트인컬처 2022년 9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아트인컬처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이현

아트인컬처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