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예비전속작가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Dialogue〉에서 우수화랑으로 선정된 9개 갤러리 디렉터를 만났다.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와 한국미술을 알리기 위한 고민,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미래 전략, 그리고 작가들과의 특별한 사연을 이대형 예술감독이 인터뷰했다.
이번〈Dialogue〉프로젝트를 기획한 큐레이터 이대형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큐레이팅의 영역을 환경, 커뮤니티, 기술, 미래 등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2017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2020년 런던, 베를린, 뉴욕, 부에노스 아이레스, 서울에서 동시에 열린 CONNECT, BTS 프로젝트, 국내 큐레이터 10인과 해외 큐레이터 10인의 리서치 네트워크〈코리아 리서치 팰로우〉를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기획했다. 최근 런던 아트 매거진 APOLLO의 2022년 40 UNDER 40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Q. “참 따뜻한 사람”. 미술계에서 온화한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특히 정정주 작가와의 12년의 인연은 특별하다. 미술시장의 유행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작가를 신뢰하고 지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현대미술 전반을 소개하고 있는데,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과찬이다.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갤러리스트로 활동한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동시대의 가치를 치열하게 탐구하는 작가의 작품이 아니면 끌리지 않았다. 그리고 미술사적으로 어떤 새로운 의미와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독보적인 아이덴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작가를 지지한다. 또한 당장 시장에서 반응하는 인기에 집착하는 작가 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미술계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긴 호흡의 작가를 선호한다. 정정주 작가의 경우 처음에는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에 끌렸다면, 그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은, 작가가 조급해하지 않고 진지하게 작업에만 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Q. 프리즈 서울 이후 한국미술지형도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급변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장미빛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스포트라이트가 강한 만큼 그림자도 크게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전례 없는 미술시장의 호황 속에서 작가가 흔들리지 않고 지켜야할 태도, 가치는 무엇인가?
현재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미술시장의 호황이란 말 그대로 세계미술시장이 한국시장으로 들어와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지 실제 한국작가에 대한 관심이 그 만큼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당분간 장미 빛 미래를 내세우는 여러 제안들이 성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와 갤러리는 흔들림없이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찾아 매진해야 한다. 폭풍 같은 몇 년이 지나고 나면 한국 미술계는 그 동안 갖추지 못했던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작가를 구별하는 안목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다. 상징가치로 어필해야 하는 작가에게 있어 다양한 의미 즉 지속가능한 상징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준비해야 될 것들이 많아졌다. 학교, 갤러리, 미술관, 미디어까지 각 분야의 사일로를 극복하고 서로 연대해 최적의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공유할 만한 스토리는 결코 혼자 만들어 낼 수 없다. 작가는 작가의 위치에서 갤러리는 갤러리의 위치에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들부터 긴 호흡으로 실천해야 한다.
Q. 결국 다국적 교류와 협업이 미술계의 새로운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 갤러리 조선의 글로벌 협업 전략과 비전은 어떻게 되나?
이번 프리즈 & 키아프 페어 기간 동안 느낀 점은 시스템적으로 준비가 부족한 한국미술계에 비해 프리즈는 너무나 완벽한 메뉴얼을 가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하루 빨리 문제를 분석하고, 그들의 선진 시스템을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 파트너십의 성공여부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비슷한 교환가치가 교류할 수 있는가에 의해 판별될 것이다. 한국 작가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해외 아트페어에 참석을 모색하고 그 과정에서 작가 프로모션에 가장 큰 도움이 될 만한 파트너를 신중하게 고를 예정이다. 현재 함께 하고 싶은 파트너는 북미 지역에 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전속작가로 이루어진 그룹전 형태로 교류전을 갖는 것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 교류전 후원 프로그램이 큰 힘이 될 것이다.
Q.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경쟁, 영토 전쟁, 여전히 진행중인 팬데믹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이 같은 맥락 속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나?
현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작품에서 현실을 느끼며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요즈음 쿨한 소비 트랜드가 된 MZ세대의 예술품 소비 욕망은 예술품의 자산가치를 보고 포트폴리오 분산 투자 심리가 작동한 측면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이 현대미술작가의 삶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몇몇 MZ세대 컬렉터를 만나보면 그들은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전쟁과 팬데믹이 낳은 자국 우선주의의 신냉전지형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단절시키지 못하도록 인류의 공감능력을 각성시켜야 한다. 이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서로 다른 사람, 문화,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예술이다.
Q. 지금 이 시점 갤러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오늘만 보면 가격표에 붙은 숫자가 전부인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오늘을 살피는 현미경보다는 더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장기 관점에서 세상을 관찰하고 작가와의 파트너십 관계를 규정해야 한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 미술사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작가와의 포용적인 관점의 연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미술관과 큐레이터와의 접점을 만들고 소통의 기회를 확장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결국 시간이 결정적인 척도이다. 새로운 작품을 가져오면 사무실에 걸어두고 오랫동안 지켜보고, 여러 의견을 듣고 작품을 선정한다. 작품 하나 고르는데도 이렇게 고민하는데 하물며 작가와 그 작가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더 치열하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