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예비전속작가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Dialogue〉에서 우수화랑으로 선정된 9개 갤러리 디렉터를 만났다.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와 한국미술을 알리기 위한 고민,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미래 전략, 그리고 작가들과의 특별한 사연을 이대형 예술감독이 인터뷰했다.
이번〈Dialogue〉프로젝트를 기획한 큐레이터 이대형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큐레이팅의 영역을 환경, 커뮤니티, 기술, 미래 등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2017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2020년 런던, 베를린, 뉴욕, 부에노스 아이레스, 서울에서 동시에 열린 CONNECT, BTS 프로젝트, 국내 큐레이터 10인과 해외 큐레이터 10인의 리서치 네트워크〈코리아 리서치 팰로우〉를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기획했다. 최근 런던 아트 매거진 APOLLO의 2022년 40 UNDER 40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Q. 유리 전문 갤러리를 시작한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간 수 많은 국내외 작가들을 발굴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미국에서 6년간 지내면서 글라스아트에 관심 갖게 되었고 인테리어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유리작품을 적용하며 컬렉션에 심취했다. 결국 2003년 본격적으로 갤러리를 시작했다. 내년이면 20주년이다. 지난 20년간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시를 하고 싶은 모든 작가들을 그곳이 해외라도 직접 찾아 다녀야 하는 원칙이다. 그런 노력으로 작가 섭외는 어렵지 않았는데, 작품의 부피와 무게 그리고 충격에 깨질 수 있는 재료적 특징 때문에 운송비와 핸들러에 대한 부담이 컸다. 개관초기에는 갤러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함께할 수 있는 국내 현대유리작가를 찾기는 어려웠고, 해외에서 먼저 컬렉터로 시작했던 관계로 체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등 해외작가 기획전부터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Q. 물리적 충격에 취약한 소재적 약점 때문에 컬렉션 진입장벽이 높아 보인다. 유리라는 소재에 대한 시장의 심리적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
유리조각은 공간, 빛과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견고하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루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신을 한다.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낸다. 그것은 유리 말고 다른 소재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다. 빛의 굴절과 산란이 교차되며 공간에 의미와 스토리가 생긴다. 이것이야 말로, 20년간 한 우물을 파게 한 유리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깨지기 쉽고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글라스 컬렉터에게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글라스 전문 갤러리와 글라스 컬렉터가 존재할 정도로 전문적인 마니아층이 생성되어 있다. 키아프에는 2005년부터 참가하면서 현대미술의 한분야로 소개하기위한 노력을 계속 기울여왔고, 이번 키아프&프리즈를 계기로 더욱더 유리공예가 아닌 유리를 소재로 사용한 현대미술로 인정받은 것 같다. 컬렉터로 시작해서 그런지 새로운 컬렉터를 만들 때 마다 큰 쾌감이 있고 자신감도 생겼다.
Q. 전속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대표적인 작가를 소개해 달라.
유리를 소재로 작업하는 세계최고의 아티스트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미국 LACMA, 일본 21세기미술관 컬렉션의 토시오 이에즈미(Toshio Iezumi),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컬렉션의 브루노 로마넬리(Bruno Romanelli) 등이 있고, 한국의 박성원(Sungwon Park), 이상민(Sangmin Lee), 이지용(Jiyong Lee) 그리고 신진작가인 김남두(Namdoo Kim), 최혜숙(Hyesook Choi) 등 10여명의 작가들이 스클로와 함께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유리에 대한 인식이 폄하되어 있었음에도 2016년에 직접 아트디렉터로 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에서 전관 박성원의 유리조형개인전을 개최하게 된 것은 지금도 갤러리스트로서 무척 영예롭게 생각한다.
Q. 유리로 원하는 작품을 자유자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마 등 인프라 구축과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인재양성이 중요할텐데,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아직 한국의 경우 퀄리티를 보장해줄 수 있는 가마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나의 오랜 지인이기도 한 이탈리아 베니스의 세계적인 유리전시 기획자이자 Fontagione Berengo의 설립자인 아드리아노 베랭고(Adriano Berengo)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일환인〈Glasstress〉라는 전시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가마와 스튜디오를 활용해 아이웨이웨이(Ai Weiwei),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다니엘 뷰렌(Daniel Buren), 올라퍼 앨리아슨(Olafur Eliasson), 랜덤 인터네셔설(Random International), 도쿠진 요시오카(Tokujin Yoshioka), 마이클 주((Michael Joo) 등 국경과 장르를 넘어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해오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학에서 전공과가 있으나 하드웨어 인프라가 어려운 관계로 실험적인 글라스 아트 작업 환경은 아직도 취약한 상황이다.
Q. 이제 한국에 공예 박물관도 생겼다. 글라스 아트를 주도하고 있는 스클로에서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국내외 글라스 아트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활동들이 더 필요한가?
문화소비의 다양성이 문화선진국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2023년 영국의 Collect 아트페어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영국 내 미술관 및 재단의 주요 인사들이 유리 소재의 예술품에까지 관심을 갖고 직접 방문한다고 하니 부럽다. 특히 공예와 파인 아트의 경계선에서 만들어지는 흥미로운 시도들로 인해 유리, 공예, 디자인, 현대미술, 건축 등의 경계를 넘어선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팔라조 두칼레 알젤름 키퍼 전시를 뒤에서 서포트한 가고시안 갤러리의 사례처럼, 한국 역시 미술관과 재단, 갤러리, 작가가 중장기적인 타임라인 아래 협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 이탈리아 무라노(Murano)와 일본 도야마(Toyama) 시의 성공은 지속적인 투자가 만든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