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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미술상 展 - The Winner is...(2)

posted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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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국내 대표 미술상인 올해의 작가상과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후보들의 전시와 수상 소식이 단연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이 두 미술상은 국내 미술현장에서 가장 큰 연례행사로 꼽히기도 한다. 올해 전시를 살펴보며 미술상이 현재까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돌아보고, 2013 미술상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의구심을 던져주는지 전문가들의 크리틱으로 들어보고자 한다.




미술상의 불확실한 미래

지난 9월 10일, 2013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이하 에르메스상)과 ‘올해의 작가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영광의 주인공은 각각 정은영과 공성훈. 두 미술상은 상금 규모는 물론 선정 작가의 국내외 위상, 심사위원 구성, 주최 기관의 공신력 등 여러 면에서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두 상을 비교하면 어딘가 에르메스상이 손해를 보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올해의 작가상이 국립현대미술관이 15년 넘게 지속해 왔던 ‘올해의 작가전’과 연속선상에 있다 해도, 에르메스상이 10여 년 넘게 ‘버티면서’ 2000년 이후 한국 미술계에 끼친 영향력은 여타 미술상과 비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미술상의 어제와 오늘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으로 출발한 에르메스상의 역사는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의 어제와 오늘을 관통한다. 1997년 한국지사를 설립한 에르메스는, 2000년 외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한국 미술계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에 따라 미술상을 제정했다. 1)첫 수상의 주인공은 장영혜중공업. 이후 김범, 박이소, 서도호, 박찬경, 구정아, 임민욱, 김성환, 송상희, 박윤영, 양아치, 김상돈, 구동희, 정은영 등 총 14명의 작가가 상을 수상했다. 올해까지 한국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끄는 총 36명(팀)의 작가가 노미네이트 됐다. 2)2000~2002년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시상식과 수상 작가 개인전이 개최됐으며, 수상 이듬해에 전시를 열던 관행은 2002년 박이소 수상 때부터 동시 개최로 변경됐다.


1) 주최 측은 1999년 미술상 제정을 알리며 개제한 광고에 상의 추천대상을 다음처럼 명시하고 있다. "회화, 조소, 비디오 아트, 사진, 건축을 포함한 시각미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중견 및 신진작가 중 괄목할 만한 창작활동을 보여 준 미술인으로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예술철학 및 전통적인 장인정신과 부합되는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 2) 이중 그룹은 플라잉시티(2004), 파트파임스위트(2011) 뿐이었다.


2003년 에르메스상은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먼저 시상 제도를 1차 추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작가 3인의 경합 체제로 변경, '미술'상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시상 제도 특유의 묘한 긴장감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에르메스상에는 한국의 터너상 혹은 휴고 보스상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한국의 아트피플은 최종 수상자를 놓고 해마다 내기를 걸기 시작했다. 또한 갤러리현대에서 아트선재센터(2005년 6회까지)로 자리를 옮겨 2006년 현재 도산공원 신사옥이 완공될 때까지 시상과 전시를 진행했다. 서도호, 양혜규, 홍승혜 작가가 선정된 당해에는 해외 심사위원으로 니콜라 부리오, 유코 하세가와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5명의 심사위원 중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해외 미술계 인사 2인을 포함시킨 것. 미술계 사람들은 2004년 미술상의 경합이 가장 뜨거웠다고 회고한다. 정연두, 플라잉시티, 박찬경이 후보로 선정, 박찬경이 <파워통로>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2005년 시상식에 수상자 구정아가 불참하면서, 이후 선정 작가 계약서에는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시상식에 꼭 참석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는 후문도 있다.


2006년 에르메스상은 도산공원 신사옥의 완공이 늦어져 2007년 초에 열렸다. 아틀리에에르메스3)라는 전시 공간을 마련한 미술상의 첫 전시에는 배영환, 임민욱, 김상길이 선정됐다. 김상길은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후보에 올라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렸지만, 상은 임민욱에게 돌아갔다. 2007년에는 김성환, Sasa[44], 이주요가 참여, 김성환이 수상했다. 2008년 재단이 설립되면서 에르메스코리아 미술상에서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으로 공식 명칭이 변경됐으며, 당해엔 송상희 작가가 상을 받았다.4)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2009년이 되자 미술상은 10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10주년 기념 도록을 출간했으며, 역대 선정 작가와 수상자를 비롯해 미술계 인사가 참여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2009년 박윤영, 남화연, 노재운이 참여, 박윤영이 수상했는데, 1979년생인 남화연은 가장 어린 나이로 후보에 오른 작가였다. 미술상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후에도 40대 작가가 두각을 드러냈다. 박진아, 배종헌, 양아치가 참여한 2010년 미술상의 승자는 양아치 작가였다. 박진아는 홍승혜에 이어 회화 작가로는 두 번째로 후보에 올랐다. 2011년(파트타임스위트, 최원준, 김상돈)에는 김상돈이, 2012년(구동희, 잭슨홍, 이미경)에는 구동희 작가가 최종 수상했다. 올해는 나현, 노순택, 정은영이 참여했다.


왼쪽)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트로피 오른쪽) 2013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 정은영의 전시 전경_[사진출처]에르메스재단왼쪽)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트로피 오른쪽) 2013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 정은영의 전시 전경_[사진출처]에르메스재단

반면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여 올해 2회째를 맞은 올해의 작가상은 상 자체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내외의 다양한 미술시상 제도의 특징을 조사, 연구'하며 그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 중에서도 4명(팀)의 경합 체제, 각계 미술 전문가의 1차 추천 심사와 5인의 국내외 미술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5)의 2차 포트폴리오 심사, 상금 규모6), 개인전 형식의 단체전 개최 등 여러 면모가 에르메스상을 빼닮았다. 작가 연령층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제정 목적과 달리, 2회까지의 양상을 살펴보면 40대 이상의 중견 작가에 초점을 맞춘 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회에는 수상자인 문경원&전준호를 포함해 김홍석, 임민욱, 이수경이 선정됐으며, 올해는 공성훈, 신미경, 조해준, 함양아가 선정됐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공립 기관의 무게감을 십분 활용해 선정 자체보다 작가의 '후원'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다양한 프로모션 채널을 개발해 한국작가를 국제 무대에 알리겠다는 것. 후원의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사전 준비 혹은 전시 기간 중 해외 미술계 인사와 연계 프로그램, 디지털 도록 발간, SBS를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 및 지상파 방송 등. 또한 1회에서는 최종 선정된 작가의 개인 도록을 발간해 전 세계 미술관에 배포했으며, 공동주최 측의 작품 매입 및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와의 1대1 매칭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다만, 공들여 제작한 다큐멘터리나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디지털 도록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을지는 의문이다.


3) 김성원, 박만우가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디렉터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백지숙이 맡고 있다.
4)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김홍희가 2002년 이어 두 번째로 심사위원에 참여하기도 했다.
5) 1회에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ich Obrist), 일마즈 지비오르(Yilmaz Dziewior), 정도련, 김복기가 , 2회에는 정형민, 김선정, 이건수, 푸자 수드(Pooja Sood), 베른하르트 제렉세(Bernard Serexhe)가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
6) 올해는 작년에 비해 상금이 1천 만원이 늘어나 선정 작가 4명(팀)에는 4천 만원이 수여됐다.




제도로서 정착한 미술상을 위해


올해의 작가상의 수상자로 회화 작가 공성훈이 선정되자, 미술계의 많은 사람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 안에는 2000년 이후 열병처럼 설치미술이나 복합장르로 일변화된 한국 미술계에서 하나의 장르에 오랫동안 매진해온 중견 작가를 향한 존경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역시 미술상의 주인공은 주최 기관이 아니라, 작가임에 틀림없다. 에르메스상이 10주년을 기점으로 쇠락한 기운을 보인 점은 어쩌면 당연하다. '메세나'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별다른 비전 없이 우후죽순처럼 제정된 기업 미술상 난립, 빈약한 작가층, 특정 장르의 쏠림 현상, 심사위원과 수상자 중복 등의 부수적인 대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제 미술상은 한국 미술계에서 하나의 제도가 되었다. 단순히 트로피와 상금 수여, 전시 기회 제공만으로는 그 끝이 보인다는 얘기다. 국내외 다양한 미술상을 공부하며 만든 올해의 작가상은 애초부터 상의 시스템에 큰 제한을 두지 않은 상태로 출발했다. 적극적으로 미술계 변화에 대처하는 유연한 태도는 좋다. 하지만 주최 측만 애쓴다고 해결될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상을 받는 혹은 후보에 오른 작가는 과연 오늘날 미술상이 작가 활동에 있어 어떤 유의미한 터닝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최 측과 다각도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왼쪽) 올해의 작가상 2012의 수장자 문경원&전준호의 아카이브실 전경 오른쪽) 올해의 작가상 2013의 수상자 공성훈 작가의 전시 전경_[사진출처]국립현대미술관왼쪽) 올해의 작가상 2012의 수장자 문경원&전준호의 아카이브실 전경 오른쪽) 올해의 작가상 2013의 수상자 공성훈 작가의 전시 전경_[사진출처]국립현대미술관

김재석 / 갤러리현대 디렉터

갤러리현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술잡지 아트인컬처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국내외매체에 미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