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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2)

posted 2015.11.19

한국과 호주의 현대미술은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90년대 양국에서 서로의 미술을 알리는 전시가 국립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호주 브리스번에서 열리는 대규모 국제전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ake, APT)는 지난 8회의 에디션동안 한국미술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국제전 중 하나가 되어 왔다. APT를 통해 본 '호주의 한국미술 열기'를 호주 아시아아트 링크 설립자인 호주 필자 앨리슨 캐롤이 전한다. 또한 올해 APT에 참여한 세명의 한국작가(최정화,정은영,양혜규)의 작업을 정연심이 소해한다. 이 원고는 출판을 통한 또다른 '한-호 미술교류'의 결과물, 호주 시각예술 잡지 아트링크(Artlink)와 더아트로가 공등으로 발행하는 '한국미술 특별호(Vol35:4, 2015Dec)의 기사이다. 호주와 한국, 두 나라의 미술의 교차하는 APT의 현장을 전한다.'




제8회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의 한국작가 3인

퀸즈랜드아트갤러리(현재 QAGOMA)에서 시작된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이하 APT)에는 1993년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 회 한국 작가들이 소개되었다. 올해 APT에서는 세 명의 한국작가가 참여하는데, 그들은 최정화, 양혜규, 정은영이다.


최정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포스트포더니즘 실험을 감행해 온 그의 세대 작가들 중 중요한 작가로 손꼽힌다. 그는 설치, 실험적인 해프닝, 큐레이팅으로 당대의 신세대 작가로 독보적 활동을 펼쳤다. 그가 학사 학위를 받은 홍익대학교에서는 당시 재직 중이던 교수들이 모두 단색화 경향을 따랐다. 단색화는 추상회화 혹은 모노크롬 모더니스트 회화를 지칭한다.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때, 최정화가 선택한 길은 당시 예술계의 주류라고 여겨지던 경향에 저항하는 것으로 매우 특이한 행보였다. 1996년 제2회 APT에 참여하게 된 그는 “수퍼 플라워(Super Flower)”라 불리는 모터로 부풀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대한 조각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이 작품은 당시 전시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작품 중 하나이다. 그는 플라스틱 바구니, 의자, 꽃 등 값싸고 흔한 재료를 작품 재료로 사용한다. 2015년 APT에 출품한 “코스모스(Cosmos)”, “플라스틱 만다라(Plastic Mandala)”, “알케미(Alchemy)” 등의 작품에서는 눈에 잘 띄는 선명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그가 활용하는 일상적인 플라스틱 오브제는 전통적인 한국 예술 시장에 가면 어디에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대중문화, 혹은 이와 관련된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최정화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플라스틱의 물성을 활용하여 키치한 대중문화와 소비주의의 특성을 가진 조각, 설치, 인테리어, 그리고 건축물을 만들어 낸다. 예술가 스스로가 연금술사로 변모하여 인공적인 재료들을 불교의 만다라, 소우주로 변형시킨다. 이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경계를 허물며 유머러스하게 그 간극을 넘나드는 것이다.


최정화, 코스모스 문화, 문화역서울284 설치, 2014, 사진제공: 최정화최정화, 코스모스 문화, 문화역서울284 설치, 2014, 사진제공: 최정화

정은영은 정체성, 여성성과 남성성의 정치학을 작품의 주제로 다뤄 왔다. 그러나 그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한국 사회에서 주어진 성 역할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여성국극”에서 이 같은 그의 관심사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은 2013년 제14회 에르메스미술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여성국극’은 문자 그대로 여성이 연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국극은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노래와 춤을 한데 섞은 극의 형태로, 여성 연기자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모두 연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극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전후 한국사회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장르는 1960년대 후반 다른 음악학적 이유와 함께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면서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지난 4년 동안, 정은영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연기했던 생존한 여성 배우들을 인터뷰하였고, 한국 현대 뮤지컬의 역사에서 이 장르가 사라지게 된 연유에 관해 연구했다. 정은영의 비디오 작품에서 극 중에서 남성의 역할을 맡은 여성 배우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조를 거부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것은 사회에서 기대하는 성 역할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여배우의 걸음걸이, 목소리, 제스쳐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구분된 성 역할에 저항하는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으로 나타났다.


정은영, 정동의 막, 2013, 단채널비디오, 15분 36초 사진제공: 정은영 정은영, 정동의 막, 2013, 단채널비디오, 15분 36초 사진제공: 정은영

양혜규는 현재 베를린과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봄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 “ 양혜규: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가 열렸다. 이 전시 제목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에서 따온 것이다. 양혜규의 작품은 적외선 히터, 전기 선풍기, 빨래 건조대, 놋쇠 방울 등 일상적인 오브제를 활용한 감각적인 설치가 주를 이룬다. 블라인드와 천장 높이 스크린 사이에서 섬세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진동하고, 동시에 특정한 향기가 다른 곳에서부터 내뿜어진다. 블라인드와 스크린은 내부와 외부, 사적인 곳과 공적인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과도기의 상태에 있고, 변형 가능하기 때문에 안과 밖이 금세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공간을 파괴하기도 한다. 양혜규 작품의 오브제는 인류학적으로 ‘선형적인 공간’ 을 만든다. 마치 예술과 비예술, 감각과 비감각, 정치와 비정치, 문명과 비문명/ 원시 등과 같은 상반된 개념 사이의 ‘문지방’처럼 말이다. 경계, 혹은 문화적인 차이는 지속적으로 양혜규의 작품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나타난다. 2006년 인천에서 선보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사동 30번지”를 선보인 이후, 양혜규는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2006년 “상파울로비엔날레(Sao Paulo Bienal)”에서는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블라인드 룸(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Blind Room)”을 선보였고, 2012년 “ 카셀 도큐멘타13(dOCUMENTA13)” 에서는 베네시안 블라인드로 만든 작품을, “APT”에는 “솔 르윗 뒤집기-958배로 확장된, 열린 모듈 입방체(소형)”를 출품하기 위해 준비해 왔다. 이 작품은 솔 르윗의 1995년 작품 “열린 모듈식의 정육면체(소형)”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양혜규,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리움미술관:“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展 설치 사진,2015, 사진: 김현수, 사진제공: Galerie Chantal Crousel,국제갤러리양혜규,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리움미술관:“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展 설치 사진,2015, 사진: 김현수, 사진제공: Galerie Chantal Crousel,국제갤러리

※ 이 원고는 호주 아트링크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협력으로 발행되었으며, 아트링크의 ‘한국미술 특집호’(KOREA contemporary art now,V.35:1, Dec. 2015)에 먼저 출판되었다.

정연심 / 홍익대학교 교수

뉴욕대에서 예술행정과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뉴욕대 인스티튜트오브파인아츠(NYU, IFA)에서 미술사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FIT 조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