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2차 시장 옥션 하우스. 경매는 대중에게 작품 소장의 기회를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작품의 시장 가치를 재평가 받는 시험장이기도 하다. 소장자가 작품 판매를 위탁한 순간부터 구입자에게 그 작품이 인도되기까지 경매회사에서는 어떻게 업무가 진행되는지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의 안내를 받으며 쫓아가본다. 서울옥션 공동기획 연재 ‘경매’ 편은 근현대미술 스페셜리스트, 고미술 스페셜리스트, 경매사, 총 세 명의 전문가들로부터 작품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는 여정을 들어볼 계획이다.
학부시절, 수업 중 '경매'라는 시스템을 통해 갱신되는 최고가 미술품을 접하면서 '미술품=미술관or갤러리'라는 일차원적인 사고가 깨졌다. 미술 작품을 상대적 가치에 의해 재평가하고, 그 가치를 자율경쟁을 통해 재확인함과 동시에 또 다른 컬렉터가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미술품 경매의 역동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2007년에 인턴으로 처음 경매에 참여하게 되었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스페셜리스트로 일해오고 있다.
미술품 경매를 찾는 이에게 보여지는 스페셜리스트의 일은 경매 전 프리뷰 전시장에서 출품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경매 당일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셜리스트의 업무는 경매와 관련된 모든 것에 교집합처럼 맞물려 있을 만큼 매우 광범위하다. 경매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소장자와의 미팅과 위탁 작품의 입고, 대상작품의 촬영 및 내역 확인, 감정 준비, 출품 가격 산정, 위탁 가격 협의, 원고 작성, 인쇄물 제작, 전시장 디스플레이, 전시 안내 및 설명, 작품 판매, 정산, 운송 스케줄 조정 등 위탁자에게는 위탁대금이 지급되기까지, 구매자에게는 구매 작품이 전달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진행한다. 하나의 경매가 준비를 시작하여 마무리되기까지 약 3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데, 연 4회 즉, 3개월마다 메이저 경매가 진행되므로 모든 업무가 빠듯한 일정 속에 진행된다.
낙찰률&낙찰총액, 매출이익 미술품 경매는 언제나 '낙찰률'과 '낙찰총액', '매출이익'이라는 성적표를 받는다. 이 때문에 경매를 기획하고 출품작을 구성함에 있어 새로운 시도보다는 보수적으로 진행해야 할 때가 있다. 이는 스페셜리스트로서 많은 아쉬움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경제적으로 안정된 작품만 출품하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 경매에서 저평가 되어 있는 작품들을 출품하는 경우에는 그 작품들의 가치를 재확인 하기 위한 기획 섹션을 마련하거나, 소규모의 기획 경매를 함께 진행한다. 이를 통해 수요의 편향된 의식을 환기시키고 미술 시장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위탁자vs구매자 미술품 경매회사에 있어 고객은 위탁자와 구매자 모두를 일컫는다. 고객을 직접 대면하고 응대하는 스폐셜리스트 중 위탁만을 받는 스폐셜리스트나 구매만 성사시켜 주는 스폐셜리스트는 없다. 소장 작품이 높은 금액에 판매되기를 희망하는 위탁자와 조금이라도 적은 금액에 낙찰 받고자 하는 구매자 사이에서 스페셜리스트는 중심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 특히, 위탁자에게는 위탁 작품이 가치에 부합하는 금액에 낙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구매자에게는 작품의 가치를 진정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따라서 스페셜리스트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 관심을 두고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Art is money? 미술품은 재테크의 또 다른 수단으로 자주 이야기 된다. 그래서인지 프리뷰 전시장을 찾는 고객들 중에 "앞으로 작품 가격이 오를 것이 확실한 작품만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미술품은 마주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지, 묵혀두었다가 금전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다. 금전적 손익만 따져 작품을 대한다면 진정한 미술품 컬렉터가 될 수 없다. 스폐셜리스트의 숨겨진 업무 중 하나는 컬렉터의 컬렉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컬렉터가 자신의 소장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적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야 한다.
국내 경매회사에서 진행되는 경매의 구성은 크게 '국내 고미술품', '국내 근현대미술품', '해외 근현대미술품' 이렇게 세 가지 파트로 구분된다. 국내외 근현대미술품의 경우, 미술사조 및 작품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파트이므로 새로운 작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지속적인 리서치를 해야 한다. 동시에 저평가 되어 있는 작가 및 작품을 발굴하여 미술 시장에서 재조명 될 수 있도록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린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책이나 논문, 학술 세미나, 전시 카탈로그 등을 통한 습득도 있지만 직접 작품을 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최대한 많은 작품을 실제로 보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익혀 두어야 한다. 또한, 국내 근현대미술품은 해외 미술 시장의 흐름에 반응하기도 하므로 전문 기관 및 잡지 혹은 웹사이트 등의 리포트를 통해 글로벌 트렌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때론 주식 및 부동산 등의 시장과 그 흐름이 연계될 때도 있으므로 경제 관련 이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담당 이외의 파트에 대한 전반적인 기본 지식을 갖춰야한다. 각 파트는 미술사조 등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스폐셜리스트는 자신의 담당 분야와 일치하는 고객만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경매와 홍콩 경매는 장소에 따른 작품 수요에 차이가 있어 경매 구성이 달라진다. 국내 경매의 경우, 고미술 및 국내외 근현대미술품으로 구성되는 반면, 홍콩 경매의 경우, 고미술품을 제외한 국내외 근현대미술품만으로 구성된다. 거래되는 근현대미술품만 비교 했을 때, 국내 경매는 국내 근현대미술품이 80% 이상을 차지하지만, 홍콩 경매는 국내 근현대미술품이 해외 근현대미술품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편이다. 작품의 비중도 현저히 다르다. 국내 경매는 컬렉터들의 안정적인 구매 성향으로 인하여 인지도 높은 작가의 작품이 전체를 차지하는데 반해 홍콩 경매는 작가의 미래가치예에 대한 컬렉터들의 투자가 국내보다 많아 젊은 작가의 작품에도 비중을 두는 편이다.
많은 이들이 미술계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경매회사의 스페셜리스트는 여느 직종에 비해 노출 빈도가 높지 않아 이를 바라보는 후배들의 호기심과 환상은 더욱 클 수도 있겠다. 자신이 꿈꾸는 목표를 향해 준비해온 것들이 많겠지만 의욕과 열정, 자신감만으로는 화려함 이면에 가려진 노력을 메울 수 없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공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겸손해지려고 노력한다면 더욱 멋진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매는 스폐셜리스트들이 만들지만 경매를 준비하고 이끄는 데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서울옥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