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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획, 개념과 실천의 동시미학 Ⅰ

posted 2012.06.29

전시기획이란 무엇인가? 큐레이터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시대적 이슈를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 이를 전시기획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시기획에는 수많은 실무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기획자의 머리 속 기획단계부터 초기 기획의 실천단계, 작가섭외, 전시예산과 전시공간의 확보 부분까지 살펴보도록 한다.




'전시기획'을 동시대적 의미로 정의하는 일은 물론 쉽지 않다. 그 막연한 실체에 접근하기 전에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전시기획의 개념적 범주에 특정한 기술을 수반하는 직무 행위를 지시하는 실무적 의미부터, 시대를 읽어내고 자신만의 관점을 소통한다는 개념적 의미까지 실로 광대한 의미의 스펙트럼이 은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시기획의 중층적이고 양가적인 성격이야말로 앞으로 전시기획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핵심적 직무 정체성이다. 이 글은 현장에서 전개되는 업무 흐름을 전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모호함에 실질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에 목적이 있다. 앞으로 기술될 전시기획의 방법론은 대체로 각각의 단계에서 진행되는 실무적인 내용들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읽는 이들은 그 사안들의 이면에 내재되어야 할 다양한 통찰력과 인문학적 측면들을 분명하게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전시기획’은 그 대상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는 일이라는 점도 덧붙인다. 즉 기획의 대상이 되는 작품의 유형과 특징은 전시기획을 정의하는 데 수반되어야 할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이 글에서는 ‘동시대 미술전시’의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전시기획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전시 구상의 단계


전시의 기획을 위해서는 먼저 배경지식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학습의 기초가 필요하다. 이것은 미술 작품의 유형과 흐름, 그리고 미술작가들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기반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통찰력과 관계되는 부분이다. 그러한 시각을 기반으로 동시대 시각예술의 환경에서 거론하거나 조명할만한 개념과 주제, 장르, 동향, 작가, 현상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전시들을 관람하고 관련 도서나 저널 등을 탐독하며 각종 학술행사나 토론의 자리 등을 경험하며 현상을 목도하는 근면함도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연구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도 필수요소다. 모든 주제는 동시대적이었을 때 의미를 획득함을 상기하자. 평소 구축된 연구의 깊이와 관심사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전시 주제를 도출한다. 전시기획의 주제가 갖춰야 할 핵심적인 덕목은 동시대성과 독창성이다. 자신이 수립한 주제가 시대정신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기존에 다른 기획자에 의해 시도된 적은 없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전시기획은 결국 설득력을 갖출 수 없고, 독창성을 확보하지 못한 전시기획은 아무리 완성도가 높아도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전시가 열리는 장소와 그 장소를 찾는 관객에 대한 분석이다. 장소와 관객의 특성에 대한 신중한 고려는 그 전시의 설득력을 구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만일 전시가 해외에서 개최되는 경우라면 특히 해당 지역의 문화적 배경이나 인구특성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주제가 확정되면 관련된 작가와 작품을 조사해야 한다. 주제나 상황에 맞춰 기획자가 즉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의 볼륨은 그 기획자의 중요한 경쟁력과 비례한다. 평소 꾸준히 관련정보들을 습득하고 축적하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이렇게 즉각적으로 동원가능한 정보들의 범위가 국내외를 망라하고 있다면 그 기획자는 국제적인 시각과 적절한 사전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조사연구는 대체로 도서나 도록, 인터넷 아카이브 등을 활용하게 되는데, 아르코 아카이브와 같은 전문 자료실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한 조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출품 작가와 작품을 선정한다. 작가 선정은 기획의 모든 사전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첫 걸음으로서, 기획자의 역량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자신이 수립한 주제를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작가들을 엄선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전체 전시의 구성을 탄탄하게 해 줄 작품들을 골라야 할 것이다. 대상 작가를 선정할 때에는 해당 작가가 출품하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하여 항상 후보군을 확보해놓아야 한다.




기획 진행의 단계


이제 작가들을 섭외할 차례다. 이것은 기획자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던 기획안이 외부 영역으로의 이동을 시작하는 단계이며, 점진적인 피드백의 시작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선정한 작가에게 출품을 의뢰할 때, 기획의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와 함께 작가의 출품을 유도할 수 있는 논리와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 기획자가 갖춰야 할 실천적 역량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 즉 ‘소통의 능력’은 바로 이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그러한 소통의 능력은 해외 작가들을 섭외할 때 더욱 긴요하다. 자신이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작가라면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안한 대화가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중하면서도 강력하게 작가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기획자들이 기대하는 것에 비해 작가들은 의외로 기획자의 제안에 그리 쉽게 응하지 않는다. 특히 출품 의뢰를 많이 받는 작가들은 더더욱 그렇다. 많은 경우 작가들은 기획자의 설득력과 함께 전시의 구현 가능성을 많이 고려한다. 때문에 초보 기획자들은 작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적절한 논거들을 잘 갖추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작가 섭외를 마쳤으면 이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기관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기획자는 내부 보고를 통해 예산안 결재를 받아야 할 것이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기획자는 공공기금이나 후원개발 등을 통해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 재원확보의 과정이야말로 전시기획의 성립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계일 것이다. 때문에 기획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고도의 능력이 바로 예산 확보의 단계에서 발휘된다. 소속기관이 있는 기획자에게는 내부의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설득력을 갖춘 논리와 언어로 자신의 전시개념을 설명하는 능력과 제한된 예산범위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편성의 능력이 요구되고, 독립기획자에게는 적절한 재원의 검색과 발굴, 그리고 설득이라는 더 복잡한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외부 재원을 활용하는 경우 예산 편성의 불투명성은 더 커지게 된다. 그 때문인지 많은 독립기획자들이 공공기관등에 기획안을 제출할 때 작가와의 섭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명단을 작성, 보고하는 경우를 목도하는데, 이는 지양해야 할 습관이며 반드시 작가와의 사전 소통과 성사시 출품확인을 확정지은 후 기획안을 제안해야 한다. 예산이 확보되면 출품작가들과 전시계약을 체결하고 출품작을 확정한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출품될 작품의 사전 상황을 체크하거나 새로 제작될 작품의 계획서 등을 작가로부터 수령해 놓는다. 그리고 작가들의 전시준비단계에서 지원금을 지급하여 작가들이 작품을 준비하는 데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 단계부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기획자와 작가간의 소통 과정이다. 작가와 기획자가 전시를 매개로 나누는 대화의 중요성은 단순히 전시를 원활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방법론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대화와 토론의 과정은 사실 전시를 통해 구현해 낼 수 있는 의미의 생성과 전달의 핵심적 과정이다. 그 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측하지 못했던 우발적 상황들의 적절한 수용, 그리고 상호 의견의 교류에서 더 단단해지는 의미의 구조, 그리고 미시적인 담론의 확장과 공유야말로 전시기획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다. 기획자들이 자신만의 공고한 이론의 틀 속에 개별 작품들을 포획하여 구금하는 방식의 강력한 큐레이터쉽은 유행이 지나고 있다. 기획자가 완성된 이론을 개진하기보다 작가들과의 의미 있는 소통을 통해 양자가 갖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구조를 창출하는 것은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는 결과로 수렴될 수 있음을 많은 전시들이 말해주고 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전시를 위해 작가들과 나누는 대화가 제공하는 즐거움이야말로 기획의 과정에서 부여받게 되는 여러 가지 즐거움 중에서도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사실이다.


2편에서 계속 →

고원석 /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고원석은 전시기획자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경영을 전공, 대안공간 풀, ㈜로렌스 제프리스, 공간화랑 등을 거쳐 현재 아르코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과 뉴욕 등지에서 다양한 전시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 문화관광체육부 국고지원사업 심의평가위원, 뉴욕 에이펙스아트(Apexart) 국제전시기획공모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동, 다양한 매체에 현대미술에 관한 원고를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