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전시 기획이 갖는 특수성과 의미, 그리고 전시 기획의 구상단계부터 기획 진행의 단계까지 살펴보았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기획된 전시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단계부터 시작, 전시기획의 전체 과정을 연결시켜보고자 한다.
장소와 작가, 작품과 같은 요소들이 확보되었다면 이제 그것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형식으로 만들어낼 차례다. 기획자의 개념구상의 창의력과 공간구성 능력이 본격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이다. 해외에서는 전시장 공간 구성과 동선 구획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공간 디자이너들이 있어서 큐레이터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러한 전문직들이 드물어서 대부분 기획자의 주도 하에 관련 분야들의 전문가(건축가, 장비전문가, 시설 관리자 등)들을 초빙하여 전시장 구성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기획자가 그러한 역량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시장의 공간구성은 전시 개념을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전시장이 갖춘 물리적인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획자의 감각과 노하우가 요구된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능력 중 하나가 적절한 전문 외주업체를 발굴하는 네트워크와 그들을 적절히 통솔하는 실무장악력이다.
동시에 전시 기간 중 진행할 부대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수반되는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에듀케이터와의 협업을 도모해야 한다. 개막식의 내용을 강화시키기 위해 공연과 같은 형식의 행사를 기획한다면 그것이 본 전시의 개념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최근 많이 시도되고 있는 작가와의 대화는 주된 관람인구들의 참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정을 조정해야 하며, 사전에 충분한 자료를 구비해놓아야 할 것이다. 전시를 위한 다양한 인쇄 홍보물 디자인과 제작의 과정도 기획자들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완성도를 갖춘 디자인을 위해 적절한 감각을 갖춘 디자이너를 섭외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짧은 시간에 논의해야 할 사안들이 매우 많으므로 서로 적절한 소통채널을 미리 확보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전시가 임박하여 전시장으로 작품을 반입할 차례다. 미술품 운송은 대개 무진동 차량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업체, 즉 아트 핸들러에 위탁한다. 이들의 운송과 설치 노하우는 전시를 구현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아트 핸들러에 대한 기획자의 정보와 지식은 긴요하게 활용된다. 반입된 작품은 컨디션 체크를 한 후 사전에 구획된 위치에 걸거나 설치한다. 또한 매체를 활용하는 작품의 경우 사전에 섭외해 놓은 전문 테크니션을 통해 장비를 반입, 설치한다. 작품을 반입한 후에는 사전에 수립한 계획대로 개별작품들을 배치한다. 사실 이 과정에서 예상되는 다른 상황에 직면한다거나 계획안 자체를 즉흥적으로 수정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이러한 돌발상황을 잘 제어하고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 또한 기획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이다. 작품 설치를 완료한 후에는 마지막으로 조명을 세팅하며 장비나 작동이 있는 작품의 경우 사전에 충분한 시간동안 시험 구동을 시켜서 이상 유무를 체크한다.
비슷한 시점에 전시를 홍보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미술관이나 큰 기관의 경우 홍보를 전담으로 하는 직원이나 부서가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기획자가 직접 홍보를 진행하게 된다. 홍보는 전시의 대외 파급력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므로 기획자가 면밀하게 관여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술전문기자들과 평소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 놓은 기획자의 경우 홍보의 효과가 더 제고된다.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노하우 또한 기획자가 갖춰야 할 실력 중 하나다. 그리고 기자간담회는 대개 전시 개막 직전이나 당일 오후쯤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사전에 밀도 있는 연락을 통해 되도록 많은 기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기획자의 능력이다.
전시 개막에 임박해서는 전시기간 중 관람객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고 관람객을 응대할 인력들을 확보하고 적절한 동선에 배치하는 일을 진행하게 된다. 또한 관객에게 작품을 설명할 도슨트 및 관리요원들에게 전시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전체 작품들에 대한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들의 태도는 전시기간 중 관람객들이 느끼는 만족도와 직결되므로 작품에 관한 충분한 내용을 전달해야 하며 친절한 태도에 대한 교육 등을 제공해야 한다. 전시장에서 관객과 관계되어 벌어지는 일들을 관리하는 전시장 매니저가 있다면 그들과 사전에 충분한 회의를 거쳐 다양한 경우의 수들을 대비해야 한다.
이제 전시를 개막하는 시점이다. 많은 기획자들에게 전시회 개막은 자신이 그동안 준비해왔던 과정들을 회고하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아니라 개막식 행사를 준비하고 수많은 내용들을 점검해야 하는 등 극도로 번잡한 시간으로서 잠시의 여유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막식을 찾은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며 전시 기획의 보람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개막식을 치르고 난 후에는 수시로 전시장을 방문하여 작품의 이상 여부와 관람객들의 반응, 그리고 장비 등의 작동 여부들을 점검해야 한다. 또한 관람객들에 의해 작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적절한 보호조처를 강구해 놓아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전시 기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개막을 시켜 놓았나 하면 어느새 폐막일이 다가온다. 전시가 종료하면 작품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재포장한 후 원래 갖고 왔던 곳으로 운송을 수행한다. 전시로 인해 변형을 가했던 전시장은 원래의 상태로 복구시키고 도색을 완료한다. 마지막으로 전시의 결과를 리뷰하고 정리하는 자료를 작성한다. 이 자료는 기금 수혜자의 경우 기금 제공자에게 제출하는 것이며 기관 근무자들에게는 상급자들에게 제출하게 되는 것이다. 관람객 유치나 홍보 실적 등과 같은 정량적 평가자료들을 취합할 뿐 아니라 기획의 완성도라든가 적절한 구현에 대한 정성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위의 전시기획 순서는 일반적으로 국내에서의 기획을 염두에 둔 것이다. 만일 기획하는 전시가 해외전시일 경우 반드시 고려해야 할 세 가지의 항목이 있다. 먼저 국내전시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양이 요구되는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적절한 재원을 확보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전시들이 잘 진행이 되다가도 결국 예산이 조성되지 못해 중단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국내로부터 조성될 수 있는 공공기금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기관을 통해 조성할 수 있는 예산까지 다양한 재원들을 발굴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전시의 제반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돌발변수에 대한 대비책을 늘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외 전시의 경우 장시간의 운송 과정에서 작품이 파손된다든가 혹은 대상 국가의 전시장소에서 원래 논의되었던 내용과는 다른 요구조건을 갑자기 제시한다든지 하는 경우에 직면할 수 있다. 또한 작품 통관상의 난관도 해외 전시 진행시 종종 등장하는 돌발상황들이다. 통관의 경우 사전에 작품들이 전시 용도로 반입되는 것임을 입증하는 적절한 서류를 구비해 놓음으로써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기획자가 신속하고 결단력있는 조처를 수행해서 더 이상의 피해를 차단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상이한 국가에서의 전시 기획을 위해 전시장 현지에 적절한 네트워크를 확보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선 위에서 언급한 돌발변수의 발생에 대응하는 가장 신속하고 확실한 대안이 될 것이다. 또한 해외에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다.
앞서 글에서 언급했듯 전시기획자에게는 면밀한 실무적 능력과 인문적 소양이 동시에 요구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이 정확한 체계에 의해 진행되는 것은 아니므로 결국 다년간의 경험에서 체득한 암묵지(暗默知)는 실로 소중한 자산이다. 기획자들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시행착오의 경험들이다. 실패와 실수의 기억을 아픔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앞으로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지식으로 육화시키는 것이야 말로 기획자가 갖추어야 할 심적 태도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